외출에 앞서 50대 부부의 집에 한바탕 소란이 일어났다. 가스레인지 밸브를 잠갔던가. 손에 들고 있던 차 키를 어디에 뒀지. 휴대폰은 또 어디로 간 거야.
방금 한 일인데도 돌아서면 기억이 가물가물하고 깜빡깜빡한 증상, 건망증. 40~50대 중년층이 되면 누구나 한두 번쯤 경험하게 되는 일들이다. 폐경 후 우울증이나 불안감에 시달리는 중년 이후의 여성, 과업에 시달리며 스트레스도 많은 중년 남성들이 건망증을 주로 겪는다.
최근에는 디지털 기기의 보급으로 인해 20~30대 청년층에서도 건망증을 호소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그렇다면 건망증은 왜 발생하게 되는 것일까? 건망증은 일상생활에서 한꺼번에 여러 가지 일을 기억해야 하지만, 일시적으로 뇌에 과부하가 생겨 기억하는 반응 속도가 느려지거나 저장된 기억을 끄집어내는 능력에 문제가 생긴 경우를 일컫는다.
갑자기 나타났다가 회복된다는 게 특징인 정상적인 기억 현상의 하나이다.
일반적으로 피로, 스트레스, 빈혈, 당뇨, 심혈관질환, 노화 등이 건망증의 원인으로 꼽힌다. 술과 담배를 즐길수록 더 자주 나타난다고 알려져 있다.
△RbAp48 유전자를 활용한 쥐 실험=최근 새로운 연구결과도 밝혀졌다. 건망증의 원인은 뇌의 기억중추인 해마(海馬)에 있는 특정 단백질 부족이 원인이며 이 단백질을 늘려주면 건망증을 고칠 수도 있다는 것이다.
2000년 노벨의학상 공동수상자이자 미국 콜롬비아 대학 메디컬센터 정신·뇌·행동연구소 소장인 에릭 캔들 박사는 이 같은 연구결과를 과학전문지 '사이언스 병진의학(Science Translational Medicine)' 온라인판에 8월 28일 발표했다. 캔들 박사가 이끄는 연구팀은 뇌질환이 없는 사망자 8명을 부검해 해마의 치상회와 노화와 관련이 없는 해마의 후내피질(EC)에서 채취한 뇌세포의 유전자 발현을 비교했다.
그 과정에서 치상회에서 노화와 관련이 있는 17개 유전자가 발견됐고 특히 이 중 RbAp48 유전자가 노화의 진행과 함께 꾸준하게 발현이 감소한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그의 연구팀은 이 유전자가 만드는 단백질이 건망증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고 보고 이를 확인하기 위해 쥐 실험을 실시했다.
유전자 조작을 통해 건강한 젊은 쥐의 뇌에서 RbAp48 유전자의 발현이 억제되게 하자 늙은 쥐에서 나타났던 기억력 저하가 나타났다. 이 유전자의 발현을 다시 회복시켜 주자 젊은 쥐의 기억력이 정상으로 되돌아왔다.
기억력 저하는 새로운 물건을 알아보는 인지 테스트와 물속의 미로찾기 테스트를 통해 확인됐다.
연구팀은 또 다른 실험에서 특정 유전자를 바이러스에 실어 주입하는 방법을 통해 늙은 쥐의 치상회에서 RbAp48 유전자 발현을 증가시켰다. 그러자 기억력과 실행능력이 젊은쥐들과 맞먹는 수준까지 향상됐다.
캔들 박사는 "늙은 쥐의 건망증을 고칠 수 있었다는 것은 고무적인 일이 아닐 수 없다"고 밝혔지만, "쥐 실험에서 사용된 물질이 사람의 건망증을 치료하는 데도 효과가 있을지는 알 수 없다"고 말했다.
△건망증, 초기 치매 증상 아니다=많은 이들이 처음 한두 번은 건망증을 웃어넘기지만, 건망증이 자주 반복되면 슬그머니 걱정을 드러낸다.
건망증이 혹시 치매로 가는 전 단계가 아닐까. 캔들 박사의 이번 연구를 통해 건망증과 치매가 연간 관계가 없다는 점도 명확하게 밝혀졌다.
캔들 박사는 "건망증은 치매와는 무관한 독립적인 증상으로 회복이 가능하다"고 강조했다.
치매는 맨 먼저 해마로 들어가는 입력경로인 후내피질을 손상시키지만 건망증은 후내피질로부터 직접 입력을 받는 부위인 치상회에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밝혀지고 있다. 그는 건망증에서는 치매처럼 신경세포의 손실은 나타나지 않았다고 밝혔다.
/제공=한국건강관리협회 충북·세종지부 건강증진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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